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섧[섭]: 동해안 해녀들의 삶과 예술적 해석의 여정

 2024년 ‘섧[섭]’ 프로젝트는 강원도 동해안 해녀들의 삶과 문화를 예술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독창적인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이다. 프로젝트의 제목인 ‘섧[섭]’은 강원도 방언으로 홍합을 뜻하는 ‘섭’과 슬프고 애달픈 감정을 담은 ‘섧다’를 결합한 표현으로, 해녀들의 고된 노동 속에서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해녀들의 강인함과 그 이면에 깃든 애틋함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강릉, 양양, 고성 등 동해안 지역의 해녀 공동체와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5월부터 9월까지 작가들은 해녀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물질 작업을 비롯한 그들의 삶의 다양한 측면을 심층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했다.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녀들과의 진솔한 교류를 통해 서로 간의 신뢰와 공감대를 쌓아가는 과정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다. 
8월에는 미술 비평가가 참여한 간담회를 통해 프로젝트의 윤리적, 미학적 접근 방식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나온 통찰은 해녀들의 삶을 다룰 때 작가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방향성을 제공하였고, 향후 창작 과정에서 해녀들의 삶을 더욱 섬세하고 진정성 있게 다루기 위한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10월부터는 수집된 기록과 자료를 체계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상, 사진, 텍스트 등의 아카이빙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작업은 해녀들의 독특한 문화와 삶을 현대적 문맥 속에서 재해석하여 지속 가능한 연구와 창작으로 연결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섧[섭]’ 프로젝트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지역적 맥락에 한정하지 않고, 이를 현대 예술을 통해 재구성하여 ‘미술’이라는 세계적인 언어로 소통함으로써 자연과 공존하며 만들어온 해녀들의 삶의 방식과 그 속에 담긴 고유한 가치가 예술적 시각으로 재발견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해녀 문화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들이 지닌 이야기를 현대와 미래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기대한다.

2024 섧[섭]_ 1차 자료집

동해안 해녀의 ‘발견’과 청년 작가들과의 만남

프로젝트 ‘섧[섭]‘의 2024년 모습을 중심으로

양효실(비평)   

 

 대추무파인아트 기획자에게 2023년 2월 24일자 지역신문 기사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사건, 사고 섹션에 의당 등장하는 죽음에 대한 기사였고, 그날 내용 중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앞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다 숨진 79세 해녀 이모씨”가 있었다. 기획자는 현장에서 돌아가신 해녀 할머니에 대한 기사에서 동해안에 해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따로 읽고 충격을 받았다. 최소한 60여년 물질을 해왔을 할머니의 생애를 기획자는 부고 기사와도 같은 소식에서 겹쳐 읽었다. 대추무파인아트 기획자는 동해안에, 가까운 영진 해변에 해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몰랐음에 충격을 받았다. 그날 아침 딱 한 사람이 받은 이상한 충격일 것이다. 강릉에서 나고 자라 스무살 이후로는 서구 유럽에서 가장 급진적인 예술과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한 기획자가 40이 넘어 다시 강릉으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는 ‘코스모폴리탄적인’ 감각이 굳은 살처럼 얹어져 있었고, 바로 그런 타자의 시선이 내지인들이라면 거의 눈길을 두지 않았을 “동해안 해녀의 삶”으로 직진하게 만들었다.

 

제주 해녀(Jeju haenyeo)는 2016년 11차 유네스코 무형유산 위원회에 의해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되었고 2017년 우리나라는 아예 해녀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보존-전승에 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해녀는 제주의 특산품, 관광상품, 문화유산인 것 같고, 간혹 부산이나 울산 바닷가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너무나 미미한 수준의 동해안 해녀를 딱히 동해안 지자체나 지역 연구자들이 중요한 지역적 가치를 갖는 상품/문화로 대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국 해녀 현황을 찾아보아도 동해안 해녀는 거의 꼴찌 수준이다. 가령 2024년 부산에서 서울로 송달된 기사에 따르면 “전국 나잠어업 종사 여성 어촌계원”의 2022년 기준 숫자는 제주가 3,150명, 경북과 울산이 대략 900명, 강원이 128명이다. 기사는 “고령화와 젊은 층의 유입 감소”로 해녀 인구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우려하며 해녀의 본산지인 제주에서 타 지역으로 원정을 와서 물질하는 ‘원정해녀’에 대한 국가적/지역적 지원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2017년 강원도민일보에서 8회에 걸쳐 기획 특집으로 다룬 “동해안 해녀가 사라진다”에 따르면 2016년 동해안 해녀 혹은 여성 나잠어업인은 47개 어촌계에 총 327명 정도가 신고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위의 두 신문기사를 놓고 보아도 불과 6년 사이에 동해안 해녀는 327명에서 128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한 것이었다. 또 다른 2023년의 신문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매년 전국에서 150명 정도의 해녀가 은퇴하고 있고, 새로 유입되는 해녀는 30명 남짓이었다. 해녀는 고령화로 인해 또 물질 자체의 고된 특성으로 인해 또 생태계 파괴 등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고 중이었다.

“몸에 아무런 장치 없이 맨몸으로 수심 10미터 이내의 바다를 잠수해서 전복, 미역, 성게 등 해산물을 직업적으로 채취하는 여자”인 해녀는 유독 제주 혹은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여성 어부들 혹은 여성 다이버들이다. 한국이 더 오래된 해녀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은 유네스코가 제주 해녀를 인정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로, 제주 해녀와 연관된 사료는 삼국 사기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해녀는 인간에 의한 자연 생태계의 파괴를 걱정하는 환경-생태주의자들, 잔존하는 주변부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타진하는 문화 기획자들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공동체이다. 해녀는 선원들을 모집해서 바다로 나가 싹쓸이를 꾀하는 대형어업 스펙트럼에서 맨 마지막 꼴찌를 차지하는 1인 자영업 노동이자 집단으로 함께 움직이는 마을 공동체 여성들의 협동 시스템이고, 월력에 맞춰 일상과 노동을 영위하는 반-자본주의적 삶의 커뮤니티이고, 결국 해양 생태계의 파괴나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곧 사라질 토착문화이다.

 

리서치 중에 알게 된 것 중에 벨렘 선언문이란 게 있었다. 1988년 브라질 벨렘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 종족생물학회(International Conference of Ethnobiology)”가 발표한 벨렘 선언문은 문화적 다양성과 생물학적 다양성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배경으로, 과학자와 환경주의자들로서의 종족 생물학자들이 “토착 공동체와 그 공동체의 지식의 보존과 강화의 주체로서의 토착민(Indigenous and traditional peoples)과의 협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선언문이다. 지금껏 지구-행성의 종 다양성의 보존 및 지속가능한 삶을 문제삼은 이들은 선진국-중앙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이제 지역-유색인-당사자들과 협업을 하겠다고, 그들의 삶의 지혜를 경청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짧은 선언문이지만 내가 여기서 더 인상 깊게 읽은 것은 “토착 전문가들을 고유한 권위를 가진 이들로 인정/대우하고 그들, 그들의 자원들, 그들의 환경에 영향을 주는 모든 프로그램들에 대한 자문을 받을 메커니즘을 설립해야한다” /“그들의 지식과 생물학적 자원을 활용하는 데 대해 토착민들에게 보상을 할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 “종족생물학자들은 함께 작업을 하는 토착민들이 자신들의 연구의 결과를 쓸 수 있도록, 특히 토착어를 사용해서 그 결과를 보급하는 것을 포함한 작업을 해야한다“와 같은 부분이었다. 토착민들의 삶을 대상으로 지역학을 활용하고, 이후에 중앙으로 그 결과를 갖고 올라가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신의 성취를 쌓아가며 중요한 사람으로 ‘출세’하는 수순을 지양하고 대신에 대신에 주체와 대상, 연구자와 토착민의 위계를 허무는 좀 더 평등하고 좀 더 협력적인 관계를 통해 상생-공생의 방식을 모색하겠다는 것이 저 선언문에 담겨 있었다. 매년 개최지를 바꿔가며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있는 국제 생물-종족학회는 2024년 회의는 모로코에서 개최했다.

 

다시 기획자의 충격으로 돌아가보자. 기획자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생겨나고 사라질 위험에 처한 해녀 문화를 그냥 만났다.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서울과 외국에서 양양으로 서핑을 즐기러 방문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동해안 바닷가는 천정부지로 땅값이 오르고 개발과 투기의 광풍에 휩싸이게 된다. 밤새 유흥을 즐기는 이들과 함께 해안선을 따라 관광지 풍경이 대거 들어섰고, 그리고 그 사이에 거의 안 보인 채로 구름과 바람, 별의 모습을 보고 살아가는 숨은 사람들, 토착민들이 계신다. 그 분들은 밖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매일 매일의 일상, 늘 해오던 대로 앞으로도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서퍼들의 바다 사이로 수백년 물질을 해온 바다가 있다. 바람을 피해 지어진 낮은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는 이들 해녀들의 삶은 아직 근대 안으로 충분히 들어오지 않았다. 그 분들이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것은, 동해안 해녀들이 거의 눈에 안 띄는 것은 새벽에 일어나 바다로 나갔다고 아침에 들어와 어촌계에서 해산물을 다듬어 공판장에 내놓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기 때문이다. 기획자가 받은 충격은 그가 ‘코스모폴리탄’으로서, 동시에 지역성/주변부성의 가치를 중앙에서 배우고 다시 지역으로 돌아온 문화기획자로서 받은 충격이다. 이렇게 가까운 데에 이렇게 중요한, 사라지는, 배우고 알아내야할/기록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문화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최초의 발견 혹은 놀람! 기획자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강릉 토착문화의 위태로운 상황 앞에서 자신이 느낀 마음, 감정의 상태를 “원통하고 슬프다”고 번역했다. 그러나 뒤늦은 발견이 항상 최초의 발견이라는 프로이트의 문장을 기억한다면 대추무파인아트의 이번 프로젝트의 동사 “섧다”에서 우리는 어떤 긴급한 마음, 죄스러운 마음, 사랑하려는 마음이 작동하는 것 같아서, 해녀를 이번 프로젝트가 어떻게 만나고 대우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그 이면이 느껴져서 사실 내년 결과보고전이 기다려지는 게 사실이다. 가끔씩 보았던 해녀가 소재나 이야기로 등장한 전시와 이번 프로젝트는 얼마나 다를까? 결국 큰 차이가 없을까? 대추무파인아트는 프로젝트 《섧〔섭〕》을 2024년 “강원문화자원 활용 작품 개발 지원”에 지원하면서 “강원도 동해안 해녀와 미술 작가들의 만남을 미술로 표현하고 작업 성과를 관객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2년째에 제출할 결과보고전의 모습을 슬쩍 보여주었다.

 

올해 프로젝트 《섧(섭)》의 작가들은 각자 특화되어 있는 자신의 작업의 형식이나 내용은 가급적 꺼내놓지 않고 대추무파인아트의 요구대로 해녀 할머니들과의 “만남”에 충실하려고 했다. 고된 노동이고 점점 온난화와 오염 등등의 문제로 작황이 좋지 않아서 예전만큼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경제활동인 해녀의 삶에 대해 들려주려고, 그 삶을 가까이에서 배우고 기록하려고 찾아오는 젊은 작가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떤 결과가, 어떤 변화나 배움이 나타나게 될까?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은 모른다. 그것은 그저 기다려야만 알 수 있는 어떤 이야기, 형식, 축제일 것이다. 4명의 작가들은 우선 할머니들과 얼굴로 인사하고, 당장에 손이 필요한 그 분들의 곁에서 일을 도와 드리고, 혹은 모닝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했다. 대추무파인아트의 취지는 “작가들은 강원 동해안 해녀들을 직접 만남으로써 진정성 있고 살아있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한편, 해녀들은 해녀의 삶과 문화를 조명하는 미술 실천에 함께함으로써 강원 동해안 해녀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데 있다. 일생 대부분의 시간을 동네와 바닷속을 오가며 살아온 할머니들에게 미술관, 작가들이라는 다른 동선을 ‘주는(give)’ 일, 자신들의 노동이 어떤 문화적/환경적 가치를 갖는 지를 배우는 일이 어떤 힘을 일으키고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아직은.

 

단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3,40대 작가들에게는 모두 이미 해녀 혹은 할머니 곁에 있었던 경험이 있고, 내가 보기에 네 분의 혹은 네 팀의 예술가들에게는 지금껏 예술가로서 접속해 온 주변부-지역의 삶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이번 프로젝트 역시 “라포 형성”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활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임호경 작가, 서인혜 작가, 이주영 작가, 그리고 부부 작가 경환과 소정이 각자 자신의 조건 속에서 만난 해녀들과의 만남의 중간 결과물을 거쳐 최종 결과물을 기다린다. 지금은 대추무파인아트의 “섧”이 내 마음이다. 동해안 해녀 공동체를 “토착적 지식인”으로 대우해드리는 일이 이제 시작되었고, 이번에 그 일을 시작하려는 이들은 과학자나 환경주의자가 아닌 예술가들이다. 사회학자나 인류학자, 환경주의자들의 만남의 방식과 다를 것이고 협업의 형식은 이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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