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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시의 군용 비행장, 군사격장 소음 방지 및 피해 보상 법률’이 제정, 시행됨에 따라 소송없이 피해주민들이 지자체에 신청해 보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강릉시의 약 4만 5,000멍의 주민이 보상을 받게 되었으나,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일부 지역 주민들은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추무파인아트의 기획전 <dB.599,850원>은 이러한 지역사회의 현안에 대해 인문학적, 해학적으로 접근하여 개인과 사회, 개성과 조화, 대의를 위한 희생 등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대중의 스트레스를 문화예술로써 풀어내 보고자 하는 전시입니다. 그동안의 지역 문화예술활동은 작가 발굴과 전시의 질적 향상, 동시대에 걸맞는 담론 형성이라는 부분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추무파인아트는 작가 개인의 서정적 감성, 자연 풍경을 이야기하는 전시나 관례적인 회원전이 아닌 담론과 사유가 수반되는 기획으로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합니다.

 지역사회의 현안과 갈등의 상황속에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차원의 연대의식입니다. 공동체의 시공간에서 연대의 가치와 의미를 기억하고 예술을 통해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기회가 되는 전시이길 바랍니다.

배 철 (b.1985)

怡潭 최 종 운 (b.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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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원주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2024. <ETC> 예술공간 아름, 수원

         <시골영감> 갤러리 Hom, 서울

         <지구를 지키는 멋진 이야기들> 경포해변

2023. <On Paper> 예술공간 서로, 서울

         <사방예술; 물의 기원> 광교저수지 일대, 수원

         <재난지역 033>, Bazinga, 강릉

2022. GIAF <강/릉/연/구>, 강릉

         <dB. 599.850원>, 대추무파인아트, 강릉

         <사공보다 많은 산>, 강원트리엔날레

2020. ASYAAF 특별전 <Rising star>,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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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de School of Fine Art, UCL 석사 졸업

중앙대학교 조소학과 학사 졸업

Selected Solo

2021. <Beyond the Space 2021> 신세계갤러리, 광주

2020. <유연한 표류> 매향리스튜디오, 화성

2018. <This is Orchestra> 김세중미술관, 서울

2013. <We are not Alone> Space CAN, Beijing, 중국

Selected Group

2022. <A에서 시작되는 울림> 상상마당, 춘천

         <Perfect Strangers Eyes>, G Contemporary, 서울

2021. <음악의 기술>, 부평아트센터, 부평

2020. <세종대왕과 음악, 취풍월 망월노래> 정부세종청사 문화관, 세종

         <혼듸 봄>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외 다수         

Artist Residency

2013. P.S. Beijing, 17th Artist, 798 Beijing, 중국

2011. 홍은예술창작센터 1기 (장기)

2009.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4기 (장기)

2008.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5기 (장기)

수상

2020. 제21회 광주 신세계미술제 대상

2019. 제30회 김세중 청년조각상

내부자의 예술, 유머의 기술

 

 양 효실

 대추무파인아트의 배철 작가와 최종운 작가의 이인전(二人展), 《dB. 599,850원》은 강릉시 소재 전투비행장 ‘K-18’의 영향권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군소음보상법’을 레퍼런스로 한다. 지역의 쟁점과 직결된 전시에서 우리는 현실적 문제를 구조화하는 예술의 독특한 방법을 접하게 된다.

 1951년 대한민국의 첫-전투-비행부대로 창설된 ‘제18 전투 비행단’은 양양에 국제공항이 들어선 2002년 전에는 강릉공항과 공유했던 활주로를 독점 사용하며 전투기 중심의 군사 훈련에 매진한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인 한국에서 K-18은 근 70년 이상을 유사시에 가장 빨리 전투기가 출격할 수 있는 비행장으로써 제 기능에 충실한 것이다. 문제는 휴전 상태임을 거의 망각한 시민들의 일상을 가로지르는 전투기의 굉음이 사람의 청각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고통스러운 수준이라는 데 있다. 즉 전쟁의 발발가능성을 염두에 둔 군사훈련과 전쟁이 끝난 듯 살아가는 민간인의 평온하기로 가정된 일상 사이의 부조화를 떠안아야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해진 것이다. 보통 조용한 사무실의 소음이 50데시벨(dB)인데 비해 전투기가 일으키는 소음은 120데시벨 정도라고 한다. 80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계속 노출되면 청각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비행장 근처 혹은 전투기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분노가 당연히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불만 제기와 집단 소송들을 목격하던 강릉시는 마침내 2020년 군소음보상법을 제정했고, 2022년 초 일정 자격과 기준에 근거하여 보상금을 차등지급할 것을 시민들에게 고지했다. 강릉시 인구 21만명 중 4만 5천명 가량이 보상금을 지급받게 되었고, 무차별적인 ‘평등’의 관점에서 채택된 선별·차등지급에 대한 불만, 잡음이 이후 제기되었을 것도 당연히 예상해볼 수 있다.

문제가 감지되었으니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당연하지만, 그 문제가 너무 커서 해결불가능한 상황을 비유한 ‘방안의 코끼리’가 이 상황에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비행장을 이전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없는, 통장에 찍힌 보상금의 액수에 일순간 시름을 놓은 시민들이 눈앞의 ‘당근’에 모든 근심을 잊고 만족하는 갇힌 말처럼 보인다든지, 보상금을 받은 이상 더 이상의 민원제기나 소송의 가능성은 불가능해진 것이라든지, 휴전국에서 살아가는 평화주의자가 군부대에 맞서 할 수 있는 시민운동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상상해야한다든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강릉시민으로써, 보상금을 받은 일부 시민으로써, 한국인으로써 세계시민으로써 일어난다. 전쟁에 대한, 지자체의 임시미봉책에 가까운 정책에 대한, 120데시벨의 소음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그 고통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연기해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문제를 문제화하는 방식에서 문제는 해결가능한 것으로, 해결불가능한 것으로 구조화된다. 해결불가능한 문제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강릉시민들, 혹은 4만 오천명의 시민들의 삶, 일상적 감각들, 모순들이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Untitled, 철근, 시멘트 등, 2022, 배철>

 파트너이자 대추무파인아트의 공동대표인 김래현과 설희경 역시 강릉시의 군소음보상금의 직접적인 수혜자들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 ‘dB. 599,850원’은 보상금지급의 합리적 기준이었던 데시벨과 설희경 기획자의 통장에 찍힌 보상금의 액수를 표식한 것이다. 공적인 문제를 기획자 개인의 경험, 자리와 연결시키면서 표식하는 방법은 그 문제를 추상적이고 집단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으려는 시도이고,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남북이데올로기의 일환인 이 문제를 반동적인 거대서사 없이 ‘자본이 주도하는’ 정책 안에서 살아가는 인구로써 접근하겠다는 것이고, 비판적 거리가 불가능한 내부자의 불가능한 시선으로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공적 기관을 운영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예외적 시민의 자의식으로 지역의 현안을 바라보는 대신에 설희경은 보상금을 받은 일반 시민 당사자로서의 자신의 자리를 드러냄으로써 모순과 역설을 감당해야하는 포스트모던한 자의식을 가시화한다. 쟁점에 대한 투명한 기술이 아니라 쟁점에 연루된 자신의 불투명성, 공모성이나 혼돈을 기록함으로써 설경희는 상황에-연루된-자의식을 실천한다. 60만원이 되기에 150원이 모자라는, 행정관료의 합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액수와 객관적 수치이자 무차별적 동일성에 다름아닌 기호 dB에서 반복되는 것은 효율성, 계산가능성, 재현성의 베일이다. 4만 오천명의 시민은 수치와 액수에 따라 통계화되고 분류되며, 그러므로 익명화된다. 설희경은 이번 전시의 제목을 익명성, 추상성, 기호성으로 채움으로써 지역적 현안 속에서 구체적 인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통계와 수치로 계산가능해지는 지를 문제화한다. 이렇듯 무력한 투항이나 담담한 기술, 정작 살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은 채로 사건을 기록하는 ‘명민함’의 ‘근거’는 무엇일까? “담론과 사유가 수반되는 기획”을 의도했다는 기획자의 글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문학적이고 해학적인”이란 문구이다. 담론과 사유가 수반되는, 이란 문구가 인문학적이란 문구와 겹치면서 반복된다면, 인문학 옆에 슬쩍 등장하고 사라지는 ‘해학적인’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미적 전략으로서의 해학(humor)은 기획서에서 딱 한번 불쑥 등장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특히 배철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로써 해학은 본 전시의 결정적인 키워드로 보였다.

 

<TGIF3, Digital Print, 80x32 cm, 2022, 배철>

 아주 잠깐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불친절하게 설명하는 아이러니와 유머의 차이를 인용함으로써, 나는 해결불가능한 문제를 해결가능한 것으로 만든 강릉 지자체의 법안을 둘러싼, “인문학적이고 해학적인” 방법에 근거한 본 전시를 이해할 단서를 제공해보려고 한다. 들뢰즈는 소크라테스 변증술,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칸트의 비판처럼 철학사의 ‘대가들’의 원리를 아이러니란 용어로 설명한다. 즉 들뢰즈는 기존의 인식론을 넘어서는 ‘새롭고’ 근본적인 원칙을 제시한 철학자들을 아이러니스트로 호명함으로써, 수사학적 기술에 의한 철학에의 비스듬한 개입을 시도한다. 아이러니는 들뢰즈에 의하면, 기존의 믿음체계 혹은 원칙들 안에서 그 원칙들을 따르고 지키는 이들 위로 ‘상승하는’, 말하자면 기존의 원칙을 전복하면서 자신의 원칙을 드러내는 ‘우월한’ 자의 철학적 방법이다.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칸트는 자신이 속한 시대의 원칙들을 허물면서 새로운 원칙들을 제시한 위반자들이다.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기존 체제와 원칙을 신봉하고 따르는 이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상승이 아닌 ‘하강’의 방식으로 기존의 원칙을 문제화하는 다른 방법으로 들뢰즈가 끌어들이는 것이 유머이다. 유머는 법칙에 복종함으로써 법칙을 전복한다. 유머는 폭악한 원칙을 폐지할 더 우월한 ‘관점’을 제시하지 않은 채, 그 원칙이 원하는 대로 충실히 복종함으로써 그 원칙을 피해나가는 이상한 방법이다. 유머는 단지 법칙을 거부하지 않는 방식이다. 들뢰즈에 의하면 유머를 구사하면 ‘허위로 복종하는 영혼이 법칙을 회피할 수 있고 법칙이 금지하는 것으로 간주된 쾌락들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머를 구사하는 이는 하강함으로써 즉 바보를 자처함으로써(민중은 개돼지라는 비난에 분노하는 게 아닌 개돼지이길 자처함으로써) 법의 영역에는 존재하지 않는 쾌락, 욕망의 움직임을 스스로에게 허용한다. 들뢰즈가 거론하는 유머의 사례는 “절차를 어김없이 따르는” 준법 투쟁이나 “철저한 복종을 통해 조롱의 효과를 낳는 마조히스트들의 행동들” 같은 것이다. 더 우월한/고상한 자가 되려는 아이러니의 방법과 달리 유머는 바보를 자처함으로써, 즉 더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자리를 ‘선택’함으로써 비판적 자의식에는 없는 쾌락을 유지한다. 문제를 해결가능한 것으로 만들거나 문제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우월한 자아에 의탁하지 않은 채, 체제에 갇혀있음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무대로 재전유할 수 있는 유머리스트의 전략은 들뢰즈가 갖고 온 사례들처럼 구체적이고 시시한 실천들이다.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즉 자기-희화화를 연출하는 유머리스트의 명민함은 더 우월한 자리가 부재하는, 더 우월한 시선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보존하려는 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횡행하는 동시대 예술의 특성이기도 하다. 체제에 투항하고 체제와 공모하는 듯 보이는, 이 비겁하고 무력한 유머리스트의 이중적 의식, 즉 바깥 없는 내부에서 방안의 코끼리와 함께 살아야하는 이들의 모순적인 의식이 도덕과 법의 세계를 횡단하는 유머리스트의 실천을 주도한다. 들뢰즈는 유머에서 철학의 타자, ‘미적인 것의 기술’을 발견한다. 나쁜 도식에 맞서 ‘좋은’ 가치를 찾으려는 아이러니가 철학사를 관통한다. 기록될 가치가 없는 유머는 일상에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례들을 통해 자신의 별 볼일 없는 생존을 구가한다.

<Shit, Digital Print, 17.7x12.5cm Each, 2022, 배철>

 강릉 기반의 지역 작가 배철도 기획자 설희경과 마찬가지로 보상금을 받았다. 56만원 정도. 그는 이 돈으로 성능 좋은 에어팟 두 개를 살 수 있겠군, 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자신이 듣는 음악을 위해 바깥의 소리를 차단하는 정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에어팟을 배철은 전투기의 굉음을 막아줄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로 전유해들인 것이다. 배철의 보상금은 에어팟으로 전치되어 작품에 표식되었다. 가령 종교화 도상의 예수나 톰 크루즈 같은 배우가 전투기 비행사로 등장하는 헐리우드 영화 포스터의 남성 주인공으로 분한 자신을 찍은 사진에서 배철은 에어팟을 끼고 있다. 먼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통의 ‘의미’를 전시하는 예수의 자리에 대신 들어간 배철이 그러므로 현재 바라보고 있는 것은 하늘을 날고 있는 전투기이다. 혹은 남성성을 전시하기 위한 공군전투기가 일으키는 소음, 민간인들의 일상적 고통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남성 문화, 자본주의 문화를 전유하면서 배철은 에어팟을 낀 자신의 어설픈 모습을 중첩시킴으로써 이도저도 아닌, 긍정과 부정이, 비판과 마비가, 자의식과 투항이 공존하는 상황을 설치한다. 이러한 연출된 사진에 붙여진 제목 ‘TGIF’는 주5일 근무자들이 금요일에 느끼는 해방감의 줄임말인 TGIF를 트위터-구글-아이폰- 페이스북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치시킴으로써, 작가에 의하면 “자본이 영생의 위치”를 차지한 현대 기술 사회를 우회적으로 언급한다. 기존의 의미로 충만한 도상들, 이미지들을 갖다 쓰면서 그것들을 구체적인 자신의 상황과 연결하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이 갖는 초-시대적, 탈-지역적 가치를 비워버리는 이러한 전략은 작가 자신에 의한 자기-훼손을 거쳐 구현된다. 거대자본을 위해 일상의 고통을 감수해야하고, 그 고통을 결국 자본이 보상하고, 그렇기에 자본이 평화를 되찾아주는 역설이나 모순 앞에서, 그런 닫힌 구조 속 자본의 악순환의 수혜자이기도 한 배철의 행위는 가치에 대한 인용과 자기-희화화를 통한 가치의 탈-가치화이다. 이것은 줄곧 동시대 예술이 해온 무력한 전술이다. 문제를 보지만 그 문제를 해결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즉 생각하는 자신을 기만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문제 안에서 놀고 있는, 유희의 쾌락은 포기하지 않는 마조히스트의 유머이다. 전시장 1층에 설치된 ‘솟아오르는 철골과 시멘트’로 만든 구조물인 <무제>는 디비의 시각적 이미지를 반복한 것이다. 콩크리트 위에 철근을 꽂아 굳힌 구조물에서 우리는 미적 노동이나 사유의 구현으로서의 예술을 감상할 수는 없다. 마감처리, 미적 개입이 거의 없는 조잡하고 흉물스런 가설물이 우리가 보는 전부이다. 철골 위에 인위적으로 붙여 놓은 몇 점의 덩어리 중 ‘읽을’ 수 있는 것은 한때 인기를 끌었던 방송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의 코너 <고욕 속의 외침>의 파편화된 이미지이다. 연예인들이 헤드폰을 끼고 상대가 목청껏 외치는 단어를 기이하게 반복하면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프로그램을 배철은 전투기 소음을 둘러싼 지역의 현안을 해석하는 수단으로 끌어들였다. 우울한 예술가 배철은 그 프로그램을 “정신병원의 환자들을 제어하려는 교화 프로그램”으로 읽었고, 그런 읽기는 이번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읽기에 통합되었다. 대안/바깥이 없는 세계에서, 바보들을 위한 세계에서 바보 보다 더 바보 행세를 하면서 세계를 견디는 우울한 예술가의 자기-희화화나 ‘조잡한’ 작업의 감춰진 진실은 작품 <무제>의 뒤편 전시장 벽에 오려붙여진 ‘죽은 아이 이미지’가 떠안고 있다. 배철이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이미지”였다고 고백한 이 이미지는 ‘읽힐 수 없는 이미지’이다. 죽은 아이 같고 누워 있는 사람 같고 소년 같고 소녀 같고 예수 같은 흑백의 이미지, 그러나 역시 이미지일 뿐인 이미지, 진실이나 진짜를 자처하는 ‘물’은 아닌 TGIF에서 긁어온 이미지.

 

<TGIF1, Digital Print, 46x70cm, 2022(左), TGIF4, Digital Print, 52x52cm, 2022(右), 배철>

 

 그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시를 하는, 서울 기반 작가 최종운의 기존작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강릉으로 출타했다. 배철이 기존의-주어진 것들을 우울증자의 유머를 통해 반복·해체한다면, 최종운은 기존의-주어진 것들을 아이의 호기심, 지금-여기에 대한 발명가적인 집중을 통해 반복·해체한다는 차이를 보인다. 평범한 일상을 채우는 사소한 물건들이나 역할이 “특별해지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원래 그것이 있던 맥락에서 자유로워지는 미적인 변용을 통해 가장 흔한/가까운 것이 가장 낯선/먼 것이 되고, 평범한 것이 비범함의 지위를 획득하는 변용이 최종운의 특이성이다. 예술가로서의 내적 연속성보다는 자신을 지금 끌어당기는 일상적 사물에 대한 순간적 몰입이 중요하기에, 경험에 즉해서 신작을 내놓기에 최종운의 작업은 산만하고 이질적이고 분산적이다. 최종운의 ‘일관성’은 폐기처리된 의자, 유리병이나 화병, 이삿짐을 쌀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 박스인 단프라박스와 같은 용도와 기능에 충실한 물건들에서 음악, 우주, 미적 형상을 찾아내고 그것을 발명가처럼 구현해낸다. 발견은 아방가르드-개념 예술가의 기본이지만, 발견된 물건을 물리적 프로세싱을 통해 악기나 작품으로 변용시키는 발명가적 개입은 최종운의 특이성이다.

 

 

 

 

 

 

 

 

 

 

 

 

 

 

<유연한 표류, Flexible floating, 동파이프, 그물망, 와이어, 사운드, 라이팅, 3x17.5x16.25m, 2020, 최종운>

한 알의 씨에서 그것이 현실태를, 하나의 질료에서 그것의 형상을 발견하는 응시는 아이의 감각을 되찾는 것이고 작가의 말대로라면 “지금 여기를 천국이고 지금이 축복이라고, 살아있음이 행복이라고” 긍정하는 것이다. 그는 진부한 세계-일상에서 더 나은/우월한 세계로의 상승을 꿰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진부한 것에 이미 항상 내재해 있는 기쁨과 놀람을 찾아냄으로써, 내부의 바보들과 공생하면서 지금 보고 듣고 만진 것들이 발신한 감각을 물리적으로나 비유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내는 연금술사이다. 이번 강릉시민들의 긴급한 쟁점을 레퍼런스로 한 전시에 최종운이 초대된 것은 무엇보다 그의 작품 <유연한 표류>가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공군폭격기의 형상 때문이었을 것 같다. 최종운은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에 1951년에 건립되어 2005년에 폐쇄된 주한미군의 공군폭격 훈련장의 하루 평균 400회 이상의 폭격 훈련을 감당하며 바다와 논밭에서 일했던 매향리 주민들의 삶과 경험을 접하고, 그곳에서 매일 이착륙을 반복했던 폭격기인 ‘A-10 선더볼트’를 어망과 동파이프를 사용해서 실물크기로 떠냈다. 높이 3미터 길이 17미터 가량의 전투기를 매향리 어민들이 사용하는 어망과 자신의 주요 실험대상인 동파이프를 연결해서 실물크기로 떠내는 불가능한 변용이 실현되었다. 매향리에서의 전시 당시 이 작품은 미군들이 세운 작은 교회를 개조한 매향리 스튜디오에 겨우 세워지고 전시되었다. 멀리 하늘을 나는 전투기를 일상적 장소이자 신성한 공간인 교회가 전신인 곳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소리로서만 감각되는 전투기의 물리적 크기를 구현하면서도, 전투기를 허물이나 껍질로 희화화하고, 속도와 거리로 삶의 공간을 동일화하는 군국주의의 냉담함을 그물을 깁고 수선하는 어부의 꼼꼼함이나 고요함으로 진정시키는, 그러나 결코 제대로 설 수도 전시될 수도 없는 이 작품의 전시불가능성 ‘앞’에서 관객은 거리나 성찰을 할 수 없게 된다. 평범한 어망으로 비범한 전투기 모형을 뜨고 생선의 뼈처럼 동파이프를 사용해서 전투기의 기호성을 쟁취한 이 작품은 이번 대추무파인아트에서도 그 크기를 증명하지 못한 채 부분적으로 서 있었다. 공동기획자인 김래현은 “본 전시는 유머와 해학을 통해 가볍게 가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관객들 가운데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언급

<This is Orchestra Quartet, Found objects, Motors, Arduino, Coding, mp3, Speakers, Infrared sensors, 300x170x280cm, 2019 최종운(左)>

<This is Hot(Edition AP), Copper pipes, Joints, 139x19.5x5cm, 2006, 최종운 ()>

했는데, 전투기를 실물크기의 모형, 접을 수 있고 차에 싣고 다닐 수 있는 물건, 공공건물에서는 실물크기로 실현할 수 없는, 실물이지만 일종의 가설처럼 등장하는 이 작품을 놓고 6.25 전후의 냉전이데올로기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최종운의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접근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종운의 ‘일관성’을 놓고 본다면 그가 매향리의 도처에서 목격한 녹슨 탄피와 폭격기의 잔해물, 그리고 ‘레디메이드’ 그물이 발명가의 상상력을 통해 그물-전투기, 접었다가 펼칠 수 있는 전투기, 장난감 같은 전투기로 변용된 것에서 김래현이 무엇을 보았길래 가벼운 유머와 해학의 장소에 초대되었을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This is Hot Pink, Acrylic, Neon, 55x15x15cm, 2014, 최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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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쌕쌔기’ 보상금

 

 강릉 시민 참여 원고

 

“형, 내곡동 살지, 비행기 소음이 시끄럽지 않아?”

 

“시끄럽지 왜 안 시끄럽겠어!”

 

“그렇지! 그래서 이번에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단체소송을 하려고 하는데 형도 끼워 줄 테니 동참을 하세요.”

 

후배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떠오르는 초고속으로 스쳐가는 추억의 편린들 -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에 반공 웅변대회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군’을 부르짖어 상을 받았고, 1974년 봄에 군에 입대하여 33개월 간 복무하면서 상시로 ‘멸공’을 외치다 제대를 한 후 가장이 되어서도 향토예비군 훈련을 받느라 고달팠던 지나간 시절이 휙 떠올랐다.

 

“그래 전투기 폭음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 정도는 참고 견뎌야 하는 것 아니야? 뭔 배상을 받겠다고 소송을 해?”

 

십여 년 전의 일로 나는 그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때 그 소송에 참여한 사람들이 꽤나 큰 금액(나의 생각과 기준)의 배상금으로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이 후 여러 법무법인들이 동 단위로 단체 소송을 대리하였는데, 그 때는 나도 어머니와 아내와 함께 소송에 동참을 하여 5년 여 후에 보상금을 받았다.

 

그런데 소송에 동참한 어머니께서는 보상금이 나오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생전 어머니의 피해 보상금은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혹시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이 착복하지는 않았을까? 궁금하였지만 국방을 위해서는 참고 견딜 수도 있는, 날마다 종일토록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보상금을 받는 현실이 감격스러웠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만세, 만만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아! 우리나라가 군사독재 국가가 아니라 국민의 주권을 최우선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완전히 탈바꿈 되었는가 !? 자본주의의 대기업 민간항공사의 비행기가 유발하는 소음이 아니고 국방을 담보하기 위한 국군의 전투기가 일으키는 소음이라도 비행구역에 거주하는 주민이 생활에 불편을 느끼면 보상을 해주는 나라 대한민국 !

 

비행기 소음 같은 피해 보상금은 물론, 각종 국가정책에 대한 피해에 대한 보상금을 받기위한 소송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평생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하고 타계하신 어머니께서 생전에 텔레비전에서 전쟁 장면이 나올 때 마다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만큼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 돼’ 하셨는데 …

 

돌아가신 어머니를 선산의 아버지 묘소에 합장해 모신지 4년이 지나고 우리 부부는 비행기 소음의 피해로 보상금을 받았던 동네인 내곡동에서 이사를 해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의 산촌에서 살고 있다.

 

내 어릴 적에, 기와집은 단 한 채 뿐이고 초가집 십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고향 마을에서 또래 동무들과 어울려 전쟁놀이를 하던 때, 가끔씩 ‘쌕쌔기’(그 당시 초음속 전투기를 우리가 부르던 이름)가 쌔애액~ 하고 큰 소리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면 푸르른 하늘에 직선의 흰 구름이 흔적으로 남았는데, 전쟁놀이 하던 우리들은 모두 그 비행기를 향해서 한겨울에도 훌쩍거리는 콧물을 훔치면서도 제대로 씻지를 않아 때가 덕지덕지 낀 ‘까마귀손’을 흔들며 환호하곤 했었다.

 

비행기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단체소송을 하는데 나도 함께 동참을 하라고 했던 그 후배는 고향의 코흘리개 동무로서 동네 유일의 기와집에 살았었고 나보다 훨씬 체격이 좋았는데도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현역으로 입대하지 않고, 동사무소 병사계에서 ‘공익 근무요원’으로 병역을 치렀고 나중에 비행장의 군무원으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였는데 학교 동문회 모임에서 가끔씩 만날 때 마다 자신이 보수주의 애국자임을 강조하며 꼭 ‘민주주의’에 ‘자유’를 덧붙여 ‘자유 민주주의’를 부르짖곤 한다. 그냥 민주주의라고 하면 개인의 자유는 박탈되는 것인가?

 

어쨌든 간에 앞으로는 소송을 할 필요도 없이 국가가 정기적으로 초음속 전투기(첨단 기종의 이름은 모르지만 ‘쌕쌔기’)의 소음을 돈으로 배상하는 법률이 공포된다고 하니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동네로 다시 이사를 갈까나?

 

 

보상금 피지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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