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미학;  Borderline Crossover

대추무 파인아트 개관전 <경계의 미학 : Borderline Crossover> 展에 부쳐

 

오래도록 새로운 ‘대추무 파인아트’

 

백기영(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 운영부장)

 

   나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태어났다. 백두대간을 축으로 하면 영서지방에 해당한다.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의 생가가 있어서 지금은 온 동네가 메밀밭으로 뒤 바뀌었지만, 소설가 한 사람의 이야기로 채워도 무방할 만큼 산 깊이 자리한 마을이어서 사람살이 흔적이 남지 않은 곳이다. 내 고향의 민초들은 자연의 순환을 따라 사라지고 태어나기를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봉평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는 이율곡 선생의 사당이 하나 있었는데, 신사임당이 율곡선생을 잉태한 곳으로 사람들은 봉산서재(蓬山書齋)라 불렀다. 어릴 적 나는 이 사당이 왜 마을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IMF가 막 시작되기 몇 년 전, 나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에서도 대도시가 아닌 인구 30만 명의 교육도시 뮌스터에서 공부했다. 미술계에서 뮌스터는 10년에 한번 씩 열리는 ‘조각프로젝트’로 유명해진 도시다. 마침 내가 독일에 도착한 이듬해에 ‘조각프로젝트’가 열려 도시 곳곳에서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업을 볼 수 있었다. 자연이 아름다운 지방 소도시의 장점을 살린 현대미술 행사였다. 이 프로젝트는 5년에 한번 씩 열리는 카셀도쿠멘타와 시기가 겹치기 때문에 전 세계 미술인들이 기다렸다가 방문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카셀시의 인구도 20만 명 정도이니 강릉시와 비슷한 규모다. 독일의 두 도시가 그런 것처럼, 오늘날 문화와 예술은 주목 받지 못하는 작은 도시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7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한국에도 이런 작은 도시의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시화가 확산되고 있는 전 세계 상황을 보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 귀국 후, 우리나라의 상황은 급격하게 변했다. 월드컵이 온 나라를 뒤흔들더니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나는 우연히 이런 변화의 흐름을 타고 새예술정책, 창의한국21, 아트인시티 공공미술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마련된 정책들은 빠른 속도로 각 지역에 전파되었으며, 이어서 전국적으로 문화재단이 설립되고 공공 문화기반 시설들이 지어졌다. 미술계에도 많은 행사들이 생겨났는데, 모두 20여 개가 넘는 비엔날레가 해를 바꾸어가며 열리고 최근에는 작은 도시마다 미술관도 늘어나서 70개가 넘는 국공립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토건국가의 관성을 따라 문화기관이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하드웨어만 늘어나지 이 기관에 담을 콘텐츠 연구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구도심 프로젝트도 내 고향에 메밀을 심는 것처럼 지역관광을 목표로 한다. 강릉도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지만, 지역으로 갈수록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기획하는 문화전문가들은 여전히 부족하다.

 

   태백산맥을 넘어 영동지방으로 내려가 보자, 대관령을 따라 강릉으로 진입하는 어귀에서 만나게 되는 성산면 금산리에는 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의 후손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있다. 이 마을 중앙에는 ‘대추무댁’으로 불리는 고택이 있고 건너편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 46호인 임경당(臨鏡堂)이 서향을 하고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다. 임경당은 강릉 김씨 명주군왕의 24세 손으로 강릉에 수백 그루의 소나무를 가꾼 인물이다. 이율곡은 이를 훌륭히 여겨 호송설(護松說)을 지어 후대에도 이어지기를 기원했다 한다. 이 두 집 사이에 17년 영국유학을 하고 돌아온 강릉김씨 40대손 김래현이 ‘대추무 파인아트’라는 현대미술 공간을 열었다. ‘대추무’는 마을사람들이 그의 집을 일컬어 부르던 말이다. 아담한 크기의 이 미술공간의 외관은 사뭇 특이하다. 합성수지 재질로 건축물을 캐스팅했던 영국의 설치미술가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인 건축물과 전형적인 농촌 주택이 자리 잡은 마을 어귀에 모던한 형태의 현대미술 공간은 자기 선언적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 유럽에서 현대미술을 습득한 기획자가 고향에서 직면하는 문화적 상황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오랜 여행에서 무엇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일까? 그는 대화에서 유연하게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것들을 들고 다니는 ‘보따리상’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그가 말한 ‘보따리상’은 ‘글로벌 유목민(global nomad)’를 지칭한 것일 게다.

 

   유목민(nomad)은 꾸준히 ‘경계(border)’를 넘는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많은 ‘경계’가 있다. 강원도 영동과 영서 지방을 나누는 경계는 백두대간이고 ‘대추무 댁’과 ‘임경당 댁’의 집은 울타리로 나뉜다. 금산리 마을의 오래된 집들과 새로 지어진 집들을 구분하는 모양이 있고 강릉 김씨의 계보는 족보에서 드러난다. 이처럼 물리적인 현상세계는 관찰을 통해서 ‘경계’를 구분해 내고 시간적 ‘경계’는 기록된 자료에 의존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 4권에서 ‘장소’와 ‘시간’론을 전개하는데, 공간과 시간을 설명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경계(Paras)’개념을 존재론적으로 해명하려고 시도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어떤 대상의 ‘부분(meros)’이 되기 위해서는 부분들을 가지고 전체가 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경계’ 개념의 첫 번째 특징은 ‘크기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기 없는 점, 선, 면 등의 ‘경계’는 아무리 많이 모아 놓아도 선, 면, 입체가 구성되지 않는다. ‘경계’는 분할하는 도구이지, 분할될 수 없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경계’ 자체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설명한다. 결국, 탈 ‘경계’의 사유는 고착화된 그 ‘경계’를 문제 삼으며, 모든 ‘경계’들 바깥으로의 완전한 초월이 아니라, ‘경계’ 자체를 근거 짓는 조건에 대한 재검토이고, ‘경계’ 이전의 또는 ‘경계’ 아래의 어떤 연속적인 사태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대추무 파인아트’의 개관전으로 이 ‘경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목민들은 이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하기에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경계’는 그 자체로 연구의 주제가 된다.

 

   이 전시에 초대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둘러싼 경계를 침범해왔다. 권대훈은 ‘자연과 미디어’, ‘환영과 실재’ 사이를 넘나드는 영상설치작업과 사색에 잠긴 인물을 조각과 드로잉으로 그려낸다. 그는 영상설치와 그림자를 뒤집어 쓴 인물의 조각을 통해 무엇이 실재이며 허구인지 질문한다. 권대훈은 원효대사의 깨달음의 예로 언급되는 화엄경의 유심계에 나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인용하는데, 원효는 '일체의 법은 인식하는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며 모든 존재의 본체는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마음은 물리적인 세계의 경계를 쉽게 뛰어넘지만, 고민과 번뇌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도 마음이 하는 일이다. 마음의 변화무쌍한 풍경은 시간에 따라 움직인다. 그는 해시계를 떠올리면서 ’일정한 시간은 그 시간에 유일한 그림자가 있다.’고 말한다. 결국 하나의 그림자 모양은 하나의 순간(현재)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초대작가 나현은 역사를 ‘경계’로 탐구한다. 그는 <화이트 크라우드 미노우(White cloud Minnow-Another history project 2003-2005>에서 자신이 구축한 가짜 서사를 중심으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내고 이를 기록한 새로운 역사책을 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옥스퍼드 도서관의 역사책 코너에 자신이 제작한 책을 몰래 꽂아 넣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가 개입하거나 생성해내는 역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라고 치부해 온 것’ 이거나 김종길의 말대로 ‘잉여의 세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잉여의 세계’는 늘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다. 특히, 역사의 경계에서 사실이라고 증명 받지 못한 허구의 세계는 경계 바깥으로 밀려나기 쉽다. 나현은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에 의해 생산된 긴장을 연구하고 그 경직성을 흔들어 대는 것을 자신의 작업으로 삼는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잉여세계’, ‘방치된 것’들을 탐구해왔는데, <나현 보고서-민족에 관하여 2008-2012>나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되었던 난지도의 귀화식물을 리서치한 <난지도, 2015>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동시대 예술가의 유랑은 이 잉여 세계의 ‘경계’를 맴돈다. 나현은 민족사의 큰 줄기에서 잊힌 사람들, 쓰레기를 은폐하기 위해 식재된 식물들, 전쟁에서 실종된 병사들 찾아서 경계를 가로지른다.

 

   마지막으로 배찬효는 자신이 영국유학시절에 경험했던 인종차별주의적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다. 작가자신이 출연하는 복장전도 사진은 마술적이고 기인한 광경을 보여준다. 가상적인 사진기술을 활용한 <Existing in Costume 2012>시리즈에는 전형적인 빅토리아풍의 복장을 한 인물이 마녀를 연기하거나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토마스 크란머(Thomas Cranmer), 가이 포크스(Guy Fawkes)등 서양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을 연기한다. 이처럼 타자로서의 서양 문화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는 과감하게 뛰어들고, 매달리거나 밀어낸다.

   때문에 그의 사진은 서양역사 속에서 나타난 동양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적 이미지와 동양인으로서 서양의 오해에서 비롯된 옥시덴달리즘적인 것이 양가적으로 나타난다. 사진은 퀴어 퀸 복장전도에서 오는 동성애적 기이함과 서양문화를 차용하는 비서구적 키치 그리고 유머러스한 패러디가 혼성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특히, <동화 Fairy Tale> 연작은 동서양의 경계와 남녀 혹은 강자나 약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등의 이분법적 경계가 뚜렷이 드러난다.

 

   불교와 유교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강릉김씨의 후손 매월당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찬탈에 분개하여 초야에 떠돌면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지만, 조선 전기 유학과 불교에 학문적 업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문체로 ‘풍류기어(風流綺語)’를 창작하여 단편소설집으로 엮었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금오신화(金鰲新話)’다. ‘금오신화’는 이승과 저승, 속세와 용궁, 실재하는 현실, 공간과 상상 속에서 그려 낼 수 있는 상징의 공간을 넘나들면서 현실 세계 속의 제도와 인습 등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강력히 대결하는 것으로 풍자와 해학이 넘친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속세에 거하면서 권력을 집요하게 비판한 김시습의 삶은 유랑하는 지성인의 전형이다. 그 후손의 마을에 새로운 전시공간이 시작됐다. 대대손손 내려온 전통을 이어받아 오래도록 새로운 공간이 되길 바란다.

(25449) 18-21 Somok-gil, Gangneung-si, Gangwon-d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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