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CURRENT EXHIBITION

POP THE BUBBLE 
17. Apr. 21 - 15. Aug. 21

 팝 아트(Pop Art)는 1950년대 중반 영국에서 그리고 1950년대 말 미국에서 등장하여 60년대에 크게 번성한 예술 사조로, 당시 주류를 이루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에 대한 반작용, 또는 확장으로 등장했다는 의견도 있다. 주로 대중 및 상업 문화의 출처에서 영감을 얻었고 60년대와 70년대에 다양한 국가와 문화 운동에 기여했다. 

 

 1960년대에 절정에 달했던 팝 아트는 예술과 문화에 대한 지배적인 접근 방식과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에 대한 반란이 특징이다. 젊은 예술가들은 미술학교에서 배운 것과 박물관에서 본 것들은 그들의 삶과 그들이 매일 보는 것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느꼈고, 그 대신에 할리우드 영화, 광고, 제품 포장, 팝 음악 및 만화책과 같은 소스를 이미지로 사용했다. 

1957년 영국의 팝 아티스트 리차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1922 ~ 2011)은 그의 친구인 건축가 피터(Peter)와 앨리슨 스미스슨(Alison Smithson)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팝 아트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열거한 적이 있다. 

 

 Pop Art is: Popular (designed for a mass audience), Transient (Short-term solution), Expendable (easy forgotten) Low cost, Mass Produced, Young (aimed at youth), Witty, Sexy, Gimmicky, Glamorous, Big business.

 팝 아트: 인기 (대중을 위해 설계됨), 일시적 (단기적인 해결책), 소모적 (쉽게 잊혀짐), 저비용, 대량 생산, 젊음 (젊은 층을 겨냥), 위트, 섹시, 눈길 끌기, 글래머러스, 대기업.

 

 모더니스트 비평가들에겐 팝 아티스트들이 ‘낮은’ 주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큰 충격이었지만, 사실 팝 아트는 예술을 새로운 주제의 영역으로 가져왔고 예술에서 그것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으며 포스트 모더니즘의 첫번째 표현 중 하나로도 볼 수 있다. 

앤디워홀.png

 앤디 워홀 (Andy Warhol, 1928 ~ 1987))의 본명은 앤드류 워홀라 (Andrew Warhola Jr.)로 미국 펜실베니아 피츠버그 출신이다. 그의 부모는 슬로바키아 북서쪽 지역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노동자들이었다. 예술적 재능을 보이던 워홀은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상업 예술을 전공하고 뉴욕으로 가서 잡지와 광고에 삽화를 그리는 상업 미술가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워홀이 활동할 당시 뉴욕에서는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 ~ 1956)과 마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 ~ 1968)에 의해 추상표현주의가 활발하였다. 1950년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 (Clement Greenberg, 1909 ~ 1994)와 페기 구겐하임 (Peggy Guggenheim, 1898 ~ 1979)에 의하여 폴록은 유럽으로부터 독립한 최초의 미국적 화가로 불리게 되는데, 이는 미국식 회화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부터 미국식 감성이 유럽과 상대하여 독자적인 가치를 주장되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은 가장 미국적인 것, 즉 일상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회화 작품을 선보이면서 미국 미술계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워홀의 작품은 미국의 소비 사회, 물질 문명의 시대를 대변한 것이며, 그의 사상은 오늘날 미국의 소비주의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가 선택했던 소재는 미국인이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비 상품인 코카콜라, 수프 통조림, 브릴로 상자, 화폐 등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러한 생필품들은 과거에는 예술의 소재 거리로 고려될 수 없었던 것이지만, 워홀은 그것들을 소재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마릴린 먼로, 앨비스 프레슬리 등의 대중 스타, 정치가인 마오쩌둥, 레닌, 지미 카터 등을 비롯해 요셉 보이스 등의 문화계 인사를 막론하고 매스 미디어에 보도된 사건, 사고, 죽음과도 연계시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같은 걸작들, 또는 식물, 꽃, 인체의 일부를 작품의 소재로 선택하기도 했다. 워홀은 이러한 소재를 이용하여 반복, 나열함으로써 이미지가 가지는 개성, 충격, 감동을 배제하고 냉담한 상태로 변형하였다. 또한 그는 실크스크린에 의한 평면화 뿐만 아니라 영화, 잡지 등을 만들며 예술 영역을 확장하였고, 예술의 대중화와 대중적인 예술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팝아티스트들 중 자본주의적 특성을 가장 독특하고 냉정하게 표현한 작가가 앤디 워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워홀은 미국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정직하게 적시했고 찬양했던 작가이다. 워홀은 “자본주의란 매우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유명인들이 마시는 코카콜라를 보통의 대중들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긍정성과 대중성을 옹호하는 주장으로 그의 예술관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워홀은 이러한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미술작품의 상업적인 상품화에 성공했다. 

 워홀은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제품을 소재로 하였는데, 그것은 일상에서 찾아낸 소재들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몇가지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 그의 소비주의 사상을 감지할 수 있다. 

  • 코카콜라

 그가 선택한 소재중 하나는 광고에서나 쓸 법한 코카콜라 병이다. 그는 특정 계층 사람들만이 아닌 대중들에게도 예술의 세계를 열고 싶어 했다. 즉, 상업미술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콜라를 작품 소재로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나라 미국의 위대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도 본질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똑같은 것을 소비하는 전통을 세웠다는 점이다. TV광고에 등장하는 코카콜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미국 대통령도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콜라를 마실 수 있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 뿐, 아무리 큰 돈을 준다 하더라도 길모퉁이에서 건달이 빨아대고 있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 유통되는 콜라는 모두 똑같다” 

 

  • 대중 스타 초상화

그는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마릴린 먼로, 앨비스 프레슬리 등의 이미지를 재창조했다. 특히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의 초상을 일용품으로 변환시켰으며, 재클린 케네디, 마오쩌둥 등의 초상화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제작하고 대량 생산하였다. 마릴린 먼로 연작을 통해 여러 해 동안 다양한 색상과 크기의 마릴린 먼로를 제작했다. 그는 먼로의 모습을 복사된 사진에 단지 색채를 덧씌워 나열하는 것만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는 그의 이러한 작업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다카시무라카미.png
도라에몽.png

 다카시 무라카미 (1962 ~ )는 일본의 현대 미술가, 팝아티스트이다. 그는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을 넘나들며 작업하며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타쿠 문화’를 미술이라는 고급 문화에 접목시켰다는 평을 듣는 그는 일본의 전통 미술과 대중 문화를 원천으로 ‘슈퍼 플랫’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슈퍼 플랫은 무라카미 자신 및 그가 영향을 준 일본 미술가들의 미술 스타일을 뜻하기도 한다. 2000년, 그는 LA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그의 “슈퍼 플랫”론을 처음 밝혔다. 이 설은 일본 미술사의 평평함, 2차원의 환상이라는 유산이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들어 있다고 전제한다. 이 스타일은 평평한 표면의 강조와 원색의 배색이라는 점에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무라카미가 주장한 슈퍼 플랫은 사회 계급과 대중의 기호가 ‘납작해지고’, ‘고급’과 ‘저급’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문화를 양산하는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이론은 그의 작품에 맥락을 제공하였고 이 개념과 합쳐져서 무라카미의 관행에는 ‘저급’ 또는 하위 문화로 여겨지던 요소들을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서 ‘고급 미술’시장에 내놓는 것이 포함되었다. 또한 그는 그의 ‘고급 미술’ 작품들을 인형이나 티셔츠 등의 상품으로 만들어 적절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함으로써 놀이의 영역 또한 ‘평평하게’ 만들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