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순 (1904 - 1994)
낙원 1937, (366 x 166cm)
소장 : 리움 삼성 미술관
2021. 1. 3.
코로나로 인해 사소한 개인 행동에도 많은 제약이 생긴 이 때, 코로나 발생 이전의 일상이 낙원, Utopia, Paradise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 유토피아를 추구하고 있으나 실상은 디스토피아인 듯 하기도 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유토피아가 결국엔 디스토피아가 아니었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디스토피아'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868년 영국 정부의 아일랜드 억압정책을 비판하면서 부터 입니다. 어원상 억압적인 사회, 강제적인 정책, 사회 비판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디스토피아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등의 개념은 현재 많은 SF, 느와르 장르의 영화에서 표현해내고 있으나 유토피아, 낙원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화 하는 작업은 디스토피아에 비해 수가 현저히 적어보입니다.
'낙원'은 서양화 도입 이후 1세대 한국 여성작가인 백남순이 제자 민영순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던 8폭 병풍입니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지만 8폭의 산수화 병풍 형식을 따랐고 동양화에서 흔히 보여지는 전통적 공간 구성, 원경의 희미한 산봉우리, 중간중간 배치된 가옥, 빠지지 않는 폭포 등은 산수화의 전형적 소재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초록색 산과 명암은 서양화의 느낌이 있고 서양풍의 저택, 누드의 여성, 과일을 따는듯한 남자, 남녀가 만나는 모습 등은 전형적인 서양 낙원 에덴동산을 그린 종교화의 느낌도 결합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 그림은 동서양 낙원의 모티브와 화화적 양식을 결합시켜 작가의 유토피아적 공간 '낙원'을 완성시킨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재로 보나 주제로 보나 또는 재료나 기법으로 보더라도 이 작품은 개화기 이후, 한국 근대 미술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작품이 아닐 수 없겠죠.
코로나가 없었던 2020년 이전의 삶을 그리워 하시는 분들께 그때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백남순 작가의 <낙원>을 소개해 봅니다.